개인적인 것들/감상문

용의자X의 헌신

키리누스 2012. 12. 12. 22:39

간만에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범죄 추리물이 보고 싶어서 이것 저것을 검색했다.

그러다 '용의자X'라는 한국 영화를 알게 되었는데,

'용의자X의 헌신' 이라는 영화와 다르다는걸 몰랐다.

내가 보게 된건 용의자X의 헌신 이다. 일본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한가지 극중 설정에 신경이 쓰였다.

'나도 저런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도 저런 상황이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영화가 끝날때 까지 머릿속 맴돌았다.




  위의 등장 인물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니 좀 게을러 보이는 외모를 가진 인물이다. 뭐 개인적으로는 게으르기 보단 의욕이 없어보였다.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찾지 못한 그런 인물같아 보였다.


이름은 '이시가미 테츠야' 학교의 수학 선생님이다.




  이런 모습의 이시가미가 아침이면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도시락집이다. 그 곳엔...


   이시가미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준 여인이 있다. '미사토'라는 딸과 함께 이시가미의 이웃에 사는

'하나오카 야스코' 뭐, 거창하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줬다고 표현을 했지만 큰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짝사랑인 것이다.


  이렇게 아침에 만나고 가게의 단골손님으로서 인사를 나눈다.



  하나오카가 아침 인사를 하자 이시가미는 거기에 답하려 입을 가리고 있는 목도리를 내린다.


  

   이 짧은 순간에 이 이시가미역을 맡은 저 연기자가 연기 참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빛이다. 눈 빛에서 기쁨이 옅보였다. 기뻣을 것이다. 이시가미는. 단순한 인사이긴 하지만 무엇하나 내 세울게 없어서 다가가지 못하는 상대가 비록 가게의 손님으로서 인사를 해온 것일 뿐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다. 눈조차 마주칠 용기가 없어서 이리저리 피하는 판국에 말을 섞다니. 기뻣을 것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이 보다 더 좋은 길조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손님이 들어 오면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 그러자 그 짧은 인사말 조차 내 뱉지 못하고 머플러로 입을 다시 가리고 가게를 나간다.

   아.... 어쩜 이렇게 내 모습과 같은가. 어쩜 이렇게 서투른가.


   바로 이 장면 하나가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바로 좋아하는 여자가 식당 주인이라는 설정이 부럽다고 느껴졌다. 이 영화에선 비록 하나오카가 도시락을 직접만드는거 같진 않아 보였지만 직접 만든 도시락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할 것이다. 물론 돈을 받고 댓가로 만들어 주는 한끼 식사밖에 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된다.


  여자가 만들어주는 식사다. 보통의 여자가 만들어 주는 식사란 가족을 위한 때가 많다. 이런 의미를 부여해 본다면 '매일 아침 밥을 좋아하는 여자가 해준다.' 라는 설정이 되는 것이다. 비록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도 내 여자가 아니더라도 그 여자가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준 식사라는 것에서 그 누군가가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되는 순간이다.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상상을 하면서 즐겁게 먹게 될 것이다. 단순한 가게 손님과 주인사이라도 좋으니 저런 상황이 되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언제던가...열아홉나이 였을까 스무살 이었을까... 내가 너무나 좋아했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내내 속앓이를 하다가 용기내서 사귀자는 말을 꺼냈다가 거절 당하고 일주일도 되기 전에 다시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 후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아이와 정말 닮은 다른 아이를 보게 되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주위를 맴돌지도 않았다. 그냥 가끔 우연히 보면 좋았지만 그 보다 더 크게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연말이 되어 회사 송년회에서 무슨 추첨을 하다가 내가 상품을 하나 받게 됬는데 그걸 그 아이에게 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이걸 왜 저한테 주는데요? 오빠가 받은거 잖아요.' 이게 그 아이에게 들은 마지막 말이었고, 그게 그 아이를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내가 좋아했던 두 아이에게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면 좀 더 오래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시가미 테츠야도 같은 이유에서 두려웠을 것이다.




  길의 철판에 비친 친구와 자신의 모습. 잘난 친구에 비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부러워 하는 것 뿐. 흔히 잘난 사람들은 이런 장면을 보면 답답해 할 것이다. 자신을 좀 더 가꾸고 자신감을 가지고 다가서면 될 것아니냐고 할 것이다. 물론 당연한 이야기다. 시도하는 만큼 가능성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모르는게 있다.

  그런 경험이 있는가? 뛰어 내리려 해도 발이 붙은것 처럼 움직일 수 없는 경험.

  그런 경험이 있는가? 다가서고 싶은데 몸이 뒤로 가는 경험.

  그런 경험이 있는가? 나는 아무 잘못 없는것 같은데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는 생각이 드는 경험.

  그런 경험이 있는가? 사랑한다고 말 하고 싶은데, 그 말이 성대로 나오지 않고 눈물샘을 타고 흐르는 경험.

   너무나 쉬운것 조차 안되는 이런 경험들. 먼 훗날 극복이 되긴 하겠지만 문제는 지금 안된다는 것이다. 내가 노력해서 그것들을 할 수 있을 때 까지 상대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마치 족쇄가 채워진냥 맘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경험들...



   그래도 이시가미 테츠야는 나보다 용기있는 인물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큰 일이다. 난 그런 용기마저 없으니 말이다....